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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친구가 프롤로 역으로 출연한다는 말에 별 기대 없이 공연장을 찾았다가, 그 길로 집에 돌아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원작을 밤새 찾아봤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했는데,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 어떤 어른용 영화보다 무겁고 진지했습니다. 1996년작 <노틀담의 꼽추>가 지금까지도 재평가받는 이유, 제가 직접 겪어본 방식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달랐던 OST

처음 영화를 틀었을 때, 오프닝이 시작되자마자 멈칫했습니다. The Bells of Notre Dame이 흐르면서 파리 시내와 노트르담 성당의 전경이 펼쳐지는데, 중간중간에 라틴어 합창 "Kyrie eleison"이 섞여 들어옵니다. 여기서 Kyrie eleison이란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전례 음악 용어로, 본래 가톨릭 미사와 레퀴엠에서 사용되는 기도문입니다. 아이들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레퀴엠 선율이 깔린다는 게 당시엔 정말 낯설었습니다.

이야기꾼이 인형극을 보여주며 "누가 괴물이고 누가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도입부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도입부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평범한 디즈니 작품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이후 콰지모도가 종탑 안에서 부르는 Out There는 또 다른 결의 감동을 줍니다. 평생 종탑 밖을 나가본 적 없는 청년이, 질투나 원망 없이 바깥 세상을 동경하며 밝게 노래하는 모습이 가슴을 눌러옵니다. 그리고 악역 프롤로의 Hellfire. 이 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대 악역 넘버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곡입니다. 여기서 Hellfire란 프롤로가 에스메랄다를 향한 욕망과 그 죄책감을 성모 마리아 앞에서 쏟아내는 노래로, 욕정을 신의 심판으로 합리화하는 인물의 내면을 가사 한 줄 한 줄이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제 경험상 이 곡을 들으면서 소름이 돋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후반부 전투 장면에서 흐르는 Sanctuary!에는 레퀴엠의 Judex Crederis, Libera me Domine, Mors stupebit et natura가 인용됩니다. 레퀴엠이란 죽은 자를 위한 미사 음악으로, 심판과 해방, 자비를 주제로 한 합창 장르입니다. 이 선율들이 전투 장면과 맞물리면서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심판과 구원의 서사로 승격되는 느낌이었습니다. OST 하나하나가 이야기의 주제를 밀고 당기는 방식이, 뮤지컬 공연에서 받았던 감동과 정확히 같은 결이었습니다.

  • The Bells of Notre Dame: 라틴어 합창 Kyrie eleison이 포함된 오프닝 넘버. "누가 괴물이고 누가 사람인가"라는 주제를 도입부에서 선언한다.
  • Out There: 종탑에 갇힌 콰지모도가 세상을 동경하며 부르는 곡. 원망 없이 희망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더 애절하다.
  • Hellfire: 악역 프롤로의 욕망과 위선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넘버. 제69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후보에 오른 앨런 멩켄의 작품이다(출처: 아카데미 공식 사이트).
  • Sanctuary!: 레퀴엠 선율을 인용한 전투 장면 배경음악. 심판과 구원의 서사를 음악으로 완성한다.
요약: 노틀담의 꼽추 OST는 레퀴엠과 전례 음악을 대담하게 인용하여 각 장면의 주제를 음악으로 완성한, 디즈니 역사에서 보기 드문 시도다.

 

프롤로가 이렇게 무서운 악역인 이유

디즈니 악역 하면 보통 마녀나 사악한 왕, 권력욕에 눈먼 군주 같은 인물들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프롤로는 그 중에서도 결이 다릅니다. 그는 자신이 선하다고 믿습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프롤로는 치안판사로서 집시들을 탄압하고 파리 곳곳을 불태우면서도, 그 모든 행위가 신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를 가리켜 독선적 신앙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독선적 신앙이란 자신의 믿음 체계를 절대적 진리로 고정한 채 타인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심리를 말합니다. 프롤로가 단순한 탐욕의 악당이 아니라 이 독선적 신앙의 화신으로 그려졌다는 점이, 다른 디즈니 악역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가장 소름 돋았던 장면은 콰지모도에게 "세상 사람들은 네 외모를 두려워하고 혐오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아이에게 세상을 차단시키면서 그게 보호라고 주입하는 구조, 이건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 훨씬 복잡한 지배 심리입니다. 프롤로를 연구한 영화 분석가들도 이 캐릭터를 입체적 악역의 교과서로 꼽을 만큼, 그 캐릭터성은 1990년대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 작품 가운데서도 압도적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디즈니 르네상스란 1989년 인어공주부터 1999년 타잔까지, 디즈니가 전성기를 다시 맞이한 시기를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이 시기 작품들 가운데 <포카혼타스>와 함께 가장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담은 영화로 노틀담의 꼽추가 꼽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프롤로라는 악역 한 명이 그 무게를 상당 부분 떠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문화 상대주의적 시각에서도 이 작품은 독특합니다. 문화 상대주의란 특정 문화의 가치를 그 문화 외부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고, 맥락 안에서 이해하려는 관점입니다. 디즈니가 의도적으로 종교적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제도화된 신앙과 인간적 사랑 사이의 갈등을 묘사한 것은 디즈니 역사에서 거의 전례가 없는 시도였습니다(출처: 영국영화협회 BFI).

요약: 프롤로는 자신이 선하다고 확신하는 독선적 신앙의 악역으로,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 가장 입체적인 악당으로 평가받는다.

 

사회정의 메시지가 해피엔딩보다 강한 이유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을 갖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저도 처음엔 조금 그랬습니다. 그런데 몇 번 더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콰지모도는 평생 고독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도 에스메랄다가 피버스를 선택하자 "내 것이 되지 않으면 없애버리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둘의 사랑을 응원하고 지켜줍니다. 이 장면이 프롤로의 태도와 정확히 대비됩니다. 프롤로는 에스메랄다를 갖지 못할 바엔 죽이겠다고 파리를 불태웠습니다. 이 대비 구조가 사회정의라는 주제를 말보다 훨씬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사회정의란 개인의 권리와 존엄이 외모나 출신, 집단의 편견에 의해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영화는 그 메시지를 설교처럼 늘어놓지 않습니다. 콰지모도가 처음으로 종탑 밖에 나갔다가 군중에게 결박당하고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 에스메랄다가 그를 감싸며 군중의 잔인함을 꾸짖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한 아이가 콰지모도의 손을 잡는 장면. 이 흐름 안에 메시지가 다 녹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마지막 장면은 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수십 번을 봤지만 달라지지 않습니다. 어두운 영화라서 주인공의 선량함이 더 빛나는 구조, 이게 이 영화가 어두운 분위기를 택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배경이 없었다면 콰지모도의 순수함이 이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편 석상 3총사 같은 요소들이 영화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저는 그 점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처음부터 15세 관람가를 목표로 만들었다면 분위기를 억지로 환기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사회정의라는 주제를 훨씬 더 일관되게 밀어붙일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어중간함이 이 영화의 유일한 흠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이 작품의 완성도를 방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약: 노틀담의 꼽추의 사회정의 메시지는 콰지모도와 프롤로의 대비 구조를 통해 설교 없이 전달되며, 어두운 분위기가 그 주제를 더 강렬하게 만든다.

 

자주 묻는 질문

Q. 노틀담의 꼽추는 아이들이 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A. 전체관람가로 출시되었지만, 실제로는 꽤 무겁고 어두운 장면들이 많습니다. 군중의 집단 괴롭힘 장면이나 프롤로의 광기적 집착 묘사는 어린 아이들에게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라면 보호자와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방식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Q.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가 왜 이어지지 않나요?

A. 원작 소설에서도 에스메랄다는 콰지모도가 아닌 피버스를 사랑합니다. 디즈니 각색에서는 피버스를 선한 인물로 바꾸면서 세 주인공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해피엔딩에 이르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포기하는 장면은 외모지상주의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고결한 감정으로 읽히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Q. Hellfire가 왜 그렇게 유명한 노래인가요?

A. 대부분의 악역 넘버가 권력욕이나 탐욕을 드러내는 반면, Hellfire는 욕망과 죄책감, 신에 대한 위선을 동시에 담아냅니다. 프롤로가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형식을 빌리면서 자신의 욕정을 정당화하는 가사 구조가 섬뜩하면서도 극적입니다. 레퀴엠 선율과 성가를 편곡한 웅장한 사운드가 가사의 무게를 배가시킨다는 점에서 역대 애니메이션 악역 넘버 중 최고로 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Q. 노틀담의 꼽추 원작 소설과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얼마나 다른가요?

A.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은 결말이 훨씬 비극적입니다. 에스메랄다는 처형되고, 콰지모도는 그녀의 시신 곁에서 아사합니다. 디즈니는 전연령 관람가에 맞게 결말을 순화하고 피버스의 캐릭터를 선하게 바꿨습니다. 하지만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주제 의식은 원작의 핵심을 충실히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결론

노틀담의 꼽추는 제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어둡고 무겁다는 게 이 영화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레퀴엠 선율이 깔린 OST, 독선적 신앙의 화신인 프롤로, 그리고 콰지모도의 순수함이 만들어내는 대비 구조가 사회정의라는 메시지를 그 어떤 설명보다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거나 어릴 때 한 번 보고 말았다면, 지금 다시 볼 것을 권합니다. 어른이 된 눈으로 보면 처음과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질 겁니다. 저는 적어도 그랬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B%85%B8%ED%8B%80%EB%8B%B4%EC%9D%98%20%EA%BC%BD%EC%B6%94(%EC%95%A0%EB%8B%88%EB%A9%94%EC%9D%B4%EC%8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