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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디즈니 헤라클레스를 처음 봤을 때, 제가 알던 헤라클레스 이야기와 너무 달라서 잠깐 당황했습니다. 어릴 적 홍은영 작가님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로 신화를 먼저 접한 탓에,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전개가 신선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1997년 개봉한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35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Hercules)를 뒤늦게 제대로 들여다봤습니다.

신화와 다른 줄거리, 처음엔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알던 헤라클레스는 12과업을 모두 완수한 뒤 신이 되어 올림포스에 안착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디즈니판 헤라클레스는 그 결말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올림포스로 돌아갈 자격을 얻는 순간, 스스로 인간을 선택합니다.
줄거리를 간단히 짚으면 이렇습니다.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음모로 불사(不死)의 능력만 잃은 채 인간 세상에 떨어집니다. 불사란 죽지 않는 신의 속성으로, 이걸 잃었다는 건 헤라클레스가 신과 인간 사이 어딘가에 끼인 존재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양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전설적인 트레이너 필록테테스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영웅으로 성장합니다.
이 과정이 저한테는 꽤 개인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취업 준비 시절 서류심사, 1차 면접, 2차 면접, 최종 면접까지 통과하면서 '이게 참 많다'고 느꼈는데, 헤라클레스의 12과업 앞에선 그 생각이 쑥 들어갔습니다. 히드라 한 마리도 벅찼을 텐데, 과업이 열두 개라니. 스크린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주인공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게 됐습니다.
하데스가 메가라를 미끼로 헤라클레스의 초인적인 힘을 일시 봉인하고, 티탄들로 올림포스를 공격하는 클라이맥스는 빠른 전개 속에서도 긴장감이 제법 살아 있습니다. 티탄이란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 신들 이전에 세상을 지배했던 거대한 원시 신격들로, 영화에서는 하데스의 최후 병기로 등장합니다.
그림체가 달라서 처음엔 어색했습니다
제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는 그림체가 있습니다. 인어공주나 미녀와 야수 같은 둥글고 부드러운 선. 그런데 헤라클레스는 달랐습니다. 캐릭터 윤곽선이 뾰족하고, 체형이 과장되게 길쭉하며, 얼굴 표현이 한층 도식적입니다. 처음 10분은 솔직히 눈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의도된 선택이었습니다. 제작진은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 회화, 즉 그리스 도기화(陶器畵) 스타일을 참고해 캐릭터 디자인을 잡았습니다. 그리스 도기화란 기원전 그리스에서 토기 표면에 그려진 인물 묘사 방식으로, 옆모습 위주의 실루엣과 날렵한 선이 특징입니다. 이 미학적 기준을 현대 셀 애니메이션에 접목했기 때문에 인물의 움직임 자체가 회화 속 인물처럼 강직하고 선명합니다.
이 그림체는 디즈니가 기존 르네상스 시대 작품들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겠다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디즈니 르네상스란 1989년 인어공주부터 시작된 디즈니의 부흥기를 가리키는 업계 용어로, 이 시기 작품들은 대체로 유사한 화풍을 공유합니다. 헤라클레스는 그 흐름 안에 있으면서도 작화 언어 면에서는 확실히 다른 문법을 시도했습니다.
익숙해지고 나면 이 그림체가 꽤 잘 어울린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뮤즈들이 나와서 가스펠 넘버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도기화 스타일의 실루엣이 리듬에 맞춰 움직이면서 시각적으로 매우 유쾌했습니다.
- 그리스 도기화 특유의 날렵하고 뾰족한 선을 캐릭터 디자인에 반영
- 디즈니 르네상스 작품들의 둥근 화풍과 의도적으로 차별화
- 현대 가스펠·팝 스타일의 OST와 그림체가 함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
- 뮤즈 캐릭터들의 움직임에서 도기화 미학이 가장 잘 살아남
흥행과 평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오해
제작비 8,500만 달러에 전 세계 흥행 수익 약 2억 5,300만 달러.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디즈니는 이 결과를 기대 이하로 받아들였고, 국내 언론도 비슷한 시선으로 봤습니다. 1997년 8월 8일자 조선일보에서 "추락하는 헤라클레스"라는 제목으로 부진을 보도했을 정도였습니다(출처: 나무위키 헤라클레스(애니메이션) 항목).
당시 라이온 킹이 전 세계에서 약 9억 달러를 긁어모은 것을 떠올리면, 상대적인 실망감이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라이온 킹은 디즈니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초대형 흥행작으로, 이후 모든 디즈니 작품이 그 기준 아래서 평가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헤라클레스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비교였을 수 있습니다.
한편 신화의 원산지인 그리스에서는 더 심각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자국의 신화적 서사를 지나치게 각색했다는 이유로 언론과 여론의 강한 비판을 받았고, 정식 개봉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원전과 창작물 사이의 간극을 둘러싼 문화적 마찰은, 이후 뮬란이 헝가리에서 겪은 상황과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자국의 역사·신화를 소재로 삼을 때 해외 스튜디오가 마주하는 구조적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이 영화는 과소평가된 수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킹덤 하츠 시리즈에 꾸준히 등장하고, TV 시리즈까지 제작됐다는 사실은 디즈니 내부에서도 이 작품을 오랫동안 애정 있게 다뤄왔다는 방증입니다.
양부모가 빠진 결말, 저는 조금 서글펐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유쾌하고 신나는 기분이 들었는데, 동시에 이상하게 씁쓸한 감정이 남았습니다. 한참 생각해보니 이유를 알겠더군요.
헤라클레스가 신의 자리를 포기하고 인간으로 남기로 선택한 이유가 메가라라는 점, 저는 그 부분이 조금 걸렸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 얼마나 강력한 동기인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둘의 관계가 진심으로 발전하는 과정도 설득력 있게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를 주워 길러준 양부모님은 그 결말 어디에도 크게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헤라클레스가 아기일 때 발견해 품에 안고 키운 사람들입니다. 남들과 다른 힘 때문에 주변에서 외면받을 때도 곁에 있었던 가족입니다. 영웅이 되겠다고 집을 떠나던 장면에서 잠깐 등장하고, 이후 비중이 거의 사라집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아쉬움인데, 헤라클레스가 인간으로 남겠다는 결심의 근거 안에 양부모에 대한 사랑과 감사함이 함께 있었다면, 그 감동이 훨씬 넓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팜므 파탈(Femme Fatale)적인 매력을 지닌 메가라는 분명 인상적인 캐릭터입니다. 팜므 파탈이란 치명적인 매력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여성 캐릭터 유형을 가리키는데, 메가라는 이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자기 의지로 선택을 바꾸는 능동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런 메가라에 비해 주인공 헤라클레스 본인은 착하고 힘세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전형적인 영웅상에 머물렀다는 평가, 제 경험상 이건 맞는 말입니다. 빌런인 하데스가 오히려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디즈니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 원작과 많이 다른가요?
A. 상당히 다릅니다. 원전에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와 인간 여성 알크메네 사이의 아들이고, 헤라는 그를 미워하는 존재입니다. 영화에서 하데스가 맡은 주요 빌런 역할도 원전에는 없는 설정입니다. 디즈니 측도 신화의 인물과 사건에서 모티브만 빌렸을 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원전과의 차이를 일일이 따지기보다는 독립된 작품으로 접근하면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Q. 헤라클레스 OST가 유명한가요?
A. 네, 이 영화의 OST는 현대 팝과 가스펠 장르를 결합한 독특한 음악으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뮤즈들이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나가는 구성 자체가 독창적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음악 중에서도 스타일이 가장 튀는 편에 속하는데, 그 덕에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됩니다.
Q. 헤라클레스는 디즈니 르네상스 작품인가요?
A. 시기상으로는 디즈니 르네상스 후반부에 속합니다. 1989년 인어공주부터 1999년 타잔까지를 르네상스 시대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인데, 헤라클레스는 1997년 작품이니 그 안에 포함됩니다. 다만 그림체와 분위기가 같은 시기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달라서, 르네상스 작품 중 가장 이질적인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헤라클레스 빌런 하데스가 인기 있는 이유가 뭔가요?
A. 하데스는 디즈니 빌런 중에서도 유머 감각이 특히 뛰어난 캐릭터입니다. 사악하면서도 찌질하고, 위협적이면서도 어딘가 웃긴 이 조합이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전형적인 어둡고 무거운 악당 대신, 말 많고 감정 기복이 심한 캐릭터로 설계된 점이 당시 기준으로 신선했고, 지금도 디즈니 빌런 인기 순위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합니다.
결론
디즈니 헤라클레스는 흥행 기준으로 보면 당시에 다소 저평가된 작품이고, 그림체와 원전 각색 방식을 두고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건, 이 영화가 단순히 유쾌한 오락 영화 이상의 무게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영웅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먼저 알고 본 탓에 낯설게 시작했지만, 다 보고 나면 이 영화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양부모의 존재가 결말에서 더 조명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익숙하든 아니든, 한 번쯤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을 처음부터 따라가보시길 권합니다. 가스펠 넘버가 흘러나오는 순간,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빠져들게 됩니다(출처: Disney 공식 사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