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라이온 킹이 처음에 기대받지 못한 B급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디즈니 르네상스의 정점이라 불리는 작품이 "5천만 달러라도 벌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들으며 만들어졌다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아프리카 초원 위로 Circle of Life가 울려 퍼지는 순간, 제 가슴이 왜 그렇게 뜨겁게 달아오르는지 이제는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도 기대 안 했던 그 영화, 어떻게 만들어졌나제가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꽤 오래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디즈니의 A급 정예 스태프들은 전부 《포카혼타스》 제작에 투입되었고, 라이온 킹은 말 그대로 남은 인원들이 꾸려 만든 세컨드 프로젝트였습니다. 제작진 스스로도 "우리가 지..
솔직히 저는 디즈니 《라푼젤》을 처음 볼 때까지 이 작품이 단순한 동화 리메이크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원작 그림 동화 속 라푼젤은 꽤 어둡고 수동적인 이야기였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2010년 개봉한 이 작품은 디즈니가 스스로 수십 년간 쌓아온 클리셰를 깨부순 전환점이었고, 저는 그 변화의 밀도가 생각보다 훨씬 치밀하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디즈니 리바이벌의 신호탄, 그 배경을 짚어보면《라푼젤》 이전 디즈니는 흥행과 평가 모두 픽사에 한참 뒤처진 상태였습니다. 2009년 개봉한 《공주와 개구리》가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두자, 디즈니 마케팅 팀은 "공주라는 단어가 남자 관객을 밀어낸다"는 분석을 내놓았고, 결국 'Rapunzel'이었던 원래 제목은 중성..
저는 보통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겨울왕국은 달랐습니다. 처음 극장에서 보고 나왔을 때, 뭔가 다시 확인하고 싶은 장면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거든요. 결국 두 번, 세 번 보게 됐고, 볼 때마다 처음엔 놓쳤던 것들이 새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2013년 개봉 이후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디즈니 르네상스 이후 침체기를 끝낸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영화, 왜 그렇게 여러 번 보게 되는지 저 나름의 이유를 정리해 봤습니다. 첫눈에 반한 영상미: 디즈니가 만든 겨울의 질감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니까 "예쁘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개막 초반부터 나뭇가지에 달린 고드름이 영롱하게 빛나는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눈더미 표현도 인상적이었..
솔직히 저는 모아나를 보기 전까지 폴리네시아 신화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바닷가 근처에서 자라 바다 자체는 낯설지 않았지만, 남태평양 사람들이 바다를 어떻게 삶의 중심으로 여겨왔는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작품이 단순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꽤 정밀하게 설계된 문화 콘텐츠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제 옆에 앉아 있던 통가 출신 친구가 "분위기를 제법 잘 살렸다"고 말하는 순간,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폴리네시아 신화를 담아낸 영상미모아나가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구별되는 가장 큰 지점은, 배경이 되는 문화권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뤘느냐는 부분입니다. 제작진은 오세아닉 스토리 트러스트(Oceanic Story Trust)라는 자문..
솔직히 저는 어릴 때 이 영화를 보면서 '몬스터가 이렇게 귀여우면 우리 집 벽장 속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밤마다 이불 속에서 귀신을 상상하며 벌벌 떨던 제가, 보라색 반점이 있는 털북숭이 몬스터를 보며 오히려 안심했으니까요.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다시 꺼내 본 《몬스터 주식회사》는 어린이 영화 그 이상이었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편견에 대한 질문을 꽤 진지하게 던지는 작품이었고, 저는 그 메시지에 반은 고개를 끄덕이고 반은 갸웃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공포: 벽장 속 괴물의 진짜 정체제가 어릴 때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반드시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봤습니다. 의자는 꼭 책상 밑에 밀어 넣어야 했고, 곰돌이 인형을 꼭 안고 있어야만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유..
픽사 《업(Up)》의 오프닝 4분은 대사 한 마디 없이 한 사람의 일생을 보여줍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이렇게 울 수도 있구나 싶었고, 그 감정이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그 감동은 한 층 더 깊어졌습니다. 실화가 녹아든 배경, 메이스필드 하우스영화 속 칼 할아버지가 재개발 현장 한가운데서 집을 지키는 장면은 그냥 만들어낸 설정이 아닙니다. 미국 시애틀 1438 노스웨스트 46번 도로에는 '메이스필드 하우스(Macefield House)'라고 불리는 실제 집이 있었습니다. 이 이름은 집주인이었던 이디스 메이스필드(Edith Macefield) 할머니에게서 따왔는데, 그녀의 이야기가 바로 《업》의..
오늘 하루 기분이 왜 이런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느낀 적, 저는 꽤 자주 있었습니다. 그냥 '기분이 안 좋다'고 뭉뚱그리고 넘어가던 저에게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은 꽤 다른 시선을 던져줬습니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이 다섯 가지 감정이 머릿속 본부에서 살아간다는 설정 하나로, 제 감정 기복의 이유를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된 영화입니다. 감정 의인화, 신선하지 않아도 픽사가 해내는 방식머릿속에 의인화된 감정이 산다는 소재, 사실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닙니다. 어깨 위의 천사와 악마 클리셰만 해도 수십 년 된 이야기고, 1990년대 미국 시트콤 Herman's Head에서도 비슷한 발상이 등장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첫 티저가 공개됐을 때 "픽사가 아이디어 고갈 아니냐"는 말이 나온 것도 그래서였..
픽사 엘리멘탈은 제76회 칸 영화제 선행 공개 당시 로튼 토마토 평론가 점수가 60% 아래로 떨어지며 혹평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저도 기대를 많이 낮추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미국 유학 시절 야외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목이 메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도 곱씹게 됩니다.이민자 서사로 읽는 원소 세계관 — 예상보다 훨씬 정밀했습니다일반적으로 픽사 애니메이션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가벼운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엘리멘탈을 직접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작품은 표면상 불·물·흙·공기 네 원소가 어우러져 사는 엘리멘트 시티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 촘촘하게 아시아계 이민자의 현실을 녹여 놓았습니다.불 원소들의 고향..
가족 역사를 조사하다 보면 증조할아버지 이름은 알아도 그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도통 감이 안 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서류 속 이름 석 자로만 존재하던 선조들이 처음으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진 건,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를 본 이후였습니다. 죽음을 소재로 하면서도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멕시코 문화를 배경으로 탄생한 이야기코코의 무대는 멕시코의 작은 마을 산타 세실리아입니다. 이 영화가 공들여 묘사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Día de los Muertos)입니다. 여기서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란 매년 11월 1일~2일에 열리는 멕시코 전통 명절로, 죽은 가족을 기억하고 그들의 영혼이 잠시 이승으로 돌아온다고 믿는 날입니다. 우리..
쥐가 주방에 있다면 당장 쫓아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쥐의 요리를 기다려야 할까요? 저는 처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픽사가 얼마나 대담한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실감했습니다. 《라따뚜이》는 프랑스 가정식 요리 하나가 냉혹한 평론가의 마음속 가장 깊은 기억을 건드리는 순간,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바뀝니다.줄거리: 쥐 한 마리가 파리 최고 주방을 흔들다프랑스 시골에서 살던 쥐 레미(Remy)는 후각과 미각이 남달리 발달해 향신료의 조합만으로도 요리의 완성도를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습니다. 이런 능력은 쥐 무리에서는 그저 쓸모없는 특이함에 불과했지만, 레미에게는 평생의 꿈과 직결된 재능이었습니다.가족과 뿔뿔이 흩어진 뒤 파리로 흘러든 레미는 운명처럼 구스토 레..
